100년전과 다를 것 없는 비정규직 건강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힘들고 어려운 작업에 내몰리고, 각종 상해에 노출됐다. 낮은 임금 때문에 충분한 휴식 없이 연장 근무를 감당해야 했다. 이들은 장애와 감염성 질환에 가장 취약했고, 이런 이유로 노동력이 떨어지니 일할 기회와 기대임금은 다시 줄어들었다. 가족 또한 피해자였다. 아이들은 굶주림이나 영양부족에 시달렸고,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다. 부인들은 부족한 수입 탓에 의류공장에 취직했지만, 마찬가지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고통받았다. 고용주들은 노동비용을 줄이려 하도급을 서슴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반복되는 단기고용과 해직 때문에 노동자들이 단체를 조직해서 고용 조건을 향상시켜 달라고 요구하기는 불가능했다.이는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 같으나, 실제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이클 퀸란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가 과거 정부와 의회 보고서, 논문집 등을 통해 그려낸 1880~1945년 영국의 모습이다. 퀸란 교수는 <국제보건의료서비스지> 최근호에 투고한 논문에서, 복지국가가 태동하기 이전인 19세기~20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비정규 직종인 항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건강문제를 분석했다. 오늘날 잘 알려진 것처럼, 그 당시 비정규직 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과 영양, 빈곤, 교육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들은 1889년부터 1910년까지 세 차례 조사위원회를 설립해 비정규직의 실태를 살폈고, 의회는 1895년과 1897년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 법안을 통과시켰다.이때로부터 무려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사회발전 수준은 당시 영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다. 그런데 유독 비정규직만은 시간이 정지해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2013년 하반기에 594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울의 비정규직 노동자 2천여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보다 낮으면서 더 많은 시간을 일했다. 연장근로 수당을 잘 받지 못했으며,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일 때문에 건강 문제가 생겨도 재계약에 영향을 줄까봐 산재 신청을 못했다는 응답도 많았다.상황이 이런데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은 오히려 100년 전 영국 사회보다 더 후진적이다. 용역회사에 간접 고용돼 있는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은 전 국회의장의 약속과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무산됐다. 집권당의 한 국회의원은 청소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이 되면 “툭하면 파업할 것”이라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간접 고용돼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붙인 대자보에 대해 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직접고용이 되면 매년 “임금인상을 해야 하고 복지 확충에 대한 직접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우려를 숨기지도 않았다.현상과 문제는 100년 전과 다름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인식수준과 해결의지는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